<나의 오늘, 그대>

어둠이 짙다
달이 사라진 밤처럼

숨이 시리다
차가운 겨울밤처럼

온 하루 밤으로 가득했다
그런 오늘의 반복이었다

그런 오늘의 언젠가
그대가 왔다

봄날의 따스함을 담았다

그대의 미소 꽃피었다
봄날처럼

나의 오늘은 그대가 되었다
--- p.49


<달빛이 부서진다는 말>

달빛이 부서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워 내심 품어온 말입니다

동그란 달빛 작은 파편 되어
하얀 눈꽃으로 피어나는 일입니다

흐드러진 눈꽃 밤 자락 걸치우고
언젠가는 내게도 한 줌 건네줄 것만 같습니다

눈꽃 하나 결 따라 고이 접어
오늘은 수줍게도 당신에게 쥐여 주고만 싶습니다

그 안에는 몽글거리는 설렘이
차마 내비치지 못해 올망졸망 자리할 것입니다

밤하늘 수놓은 백화(白花)와 함께
거기, 당신 계신 곳으로 가렵니다

달빛이 부서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당신에게 내심 전하고픈 말입니다
--- p.13


<그해 여름으로부터>

여름이 저물기 전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해 여름으로부터

나의 계절은 늘 당신이었다고
따가운 햇살과 무거운 숨 모두
당신이기에 반겨 맞을 수 있었다고

사실 나는
여름이 좋았던 게 아니라
여름을 좋아하던 당신을
좋아한 것이라고

그해 여름

오가던 웃음과 걸음들 사이
농익었다 여긴 우리의 말들과
차마 설익었던 우리의 마음이
녹음처럼 거리에 무성하던 계절

그날의 잔향을 기억하며
올해의 여름은 부디 더디 저물기를 바라며
낙조가 내리기 전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해 여름으로부터
나의 여름은 온통 당신이었다고
--- p.36


<너의 조각>

너를 담아본다
하나둘 너의 조각마다
너를 생각하며
환희와 슬픔, 연심(戀心) 모아 담아본다

어느새 가득 찬 마음 상자에
너란 이름을 적어
먼지 드리운 공간 어디쯤 두어본다

세월 지나
이따금 생각날 때
너의 조각 하나 꺼내보기 위함이다

노년의 희어진 머리칼처럼
자리한 자욱한 먼지 사이로
그날도 여전히 선명한 너를 보기 위함이다
--- p.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