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소개
《장한몽》의 ‘심순애’부터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을 거쳐 현재까지,
근현대 한국 대중예술 속 ‘신데렐라 이야기’의 흐름과 변화
흔히 사람들은 우리나라 TV드라마에서 많이 다루는 주제가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여기는 듯하다. ‘부잣집 남자와 가난하지만 총명하며 착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 말이다. 21세기 초반 한국에서 대중예술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실장님’ 혹은 ‘본부장님’으로 불리는 극중 캐릭터의 의미를 모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재벌이나 대기업의 기획실 혹은 기획본부를 맡은 기업 승계 후계자 1순위인 미혼의 멋진 남자, 애정물의 대표적인 남자주인공 캐릭터를 의미한다는 점은 삼척동자라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와 짝을 맞추는 여자주인공은 돈도 없고 집안의 후원은커녕 가족의 짐을 떠맡고 있는, 가난하지만 총명하고 착한 인물로 설정된다.
그런데 저자가 20세기 《장한몽》의 ‘심순애’부터 21세기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까지 100년에 이르는 긴 기간 동안 이어진 한국 대중예술사 속에서 신데렐라 이야기의 부침을 살펴본 결과는 무척 흥미롭다. 100년 동안 신데렐라 이야기가 인기 있었던 때는 ‘1960년대 중반’과 ‘199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 이렇게 두 번에 불과했고, 그나마 신데렐라 이야기의 기본형인 여성 신데렐라가 인기 있던 시기는 한 번뿐이었다.

1960년대 신데렐라맨, 남자의 희망
100년 동안 신데렐라 이야기가 인기를 누렸던 단 두 시기, 1960년대 중반과 1990년대 후반은 공통점이 있다. 자본주의적 성장에 대해 대체로 대중의 신뢰와 희망이 있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은 최초의 시민혁명에 성공함으로써 이승만 정권을 몰아냈고, 비록 정변으로 권력을 쥔 정권이긴 했지만, 정국을 안정시키며 경제개발계획 등을 야심만만하게 추진하면서 우호적 민심을 얻었던 때였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넘었으며 여러 법과 제도가 정비되면서 사회가 약간의 안정을 회복한 시기였다. 경제개발계획이 아직 뚜렷한 성과를 드러내지는 못했으나 산업화의 빠른 진전이 이루어질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아직은 시작하는 시기여서 국가 주도의 빠른 산업화와 강력한 국가주의적 통치가 앞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경제성장의 결실이 과연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지, 아직은 알 수 없던 시기, 그래서 희망과 신뢰가 강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무리한 장기 집권으로 지식인과 대학생의 저항이 거세졌고 노동문제와 도시주거문제 등이 마구 터져 나오기 시작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전쟁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청소년기에 도달하면서 부모뻘인 식민지 세대에 대한 불신의 태도를 뿜어대던 1970년대에 비하면, 1960년대 중반은 그야말로 순진하게 희망찬 시대였다.
그리고 이 시대에 희망차게 상승하던 신데렐라는 남자였다. 대중예술 작품의 인기를 보건대 1960년대의 민심은 가진 것 없는 남성 청년이 상승기류에 올라탄 형국이었다. 능력과 책임감과 의지까지 갖춘 남성은 말할 것도 없고, 능력과 의지는 그리 신통치 않지만, 진정성 있는 뜨거운 마음만 갖추었다면 충분히 희망적이었다. 물론 진정성 있는 사랑·결혼과 계층 상승을 동시에 달성하는 신데렐라가 남자이며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처가의 도움으로 계층 상승에 성공한다는 점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큰 약점이었다. 어찌 보면 이 시대 청춘영화의 신데렐라맨이 계층을 뛰어넘는 진정성 있는 사랑까지는 성공했지만 말끔한 해피엔딩까지 성취하지 못한 것은 그런 이유일 수 있다.

1990년대, 여자 신데렐라의 시대
그에 비해 1990년대 중반부터 펼쳐진 신데렐라의 시대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신뢰가 훨씬 더 확고해진 때였다.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어쨌든 먹고살아야 한다며, 까마득하게 먼 거리에 있는 선진국을 따라갈 거라며,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시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비록 충분한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치는 군부 출신이 집권한 비민주적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30년 가까이 고속 성장을 한 경제 상황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1990년대는 군인 출신 대통령의 시대가 끝나고 대중화된 노동운동 등으로 노동자의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졌으며,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신뢰가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던 때였다.
이제 서구와 미국 같은 선진국이 보여준 근대 자본주의의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이 우리 코앞으로 성큼 다가왔다고 느꼈고, 젊은이의 자유주의적 사고방식과 태도가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넓고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재벌 총수에 대한 호감과 존경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을 정도로 자본주의적 부의 축적에 대한 죄의식도 청산되고 있었다. 이런 신뢰의 밑바닥에는 이 사회에서 자신도 매우 풍요롭고 자유롭게 잘살 수 있으며, 그것이 당당하고 당연한 일이라는 대중의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수십 년 동안 여성의 학력과 사회 진출이 꾸준히 높아짐으로써, 이러한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에 대한 희망의 태도가 여성에게도 그리 무리하게 여겨지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비록 곧이어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신자유주의의 고통이 몰아쳤지만, 수십 년 고속 성장을 해오며 굳어진 사고방식과 신뢰의 태도는 몇 년간 지속됐다. 바로 이 시기가 대중적인 TV드라마에서 여성 신데렐라 캐릭터가 큰 호응을 받으며 당대 드라마의 주류 경향으로 자리 잡은 때였다.

100년 동안 딱 두 번, 신데렐라 이야기의 흐름으로 살펴본 한국 근현대
2010년대에 다시 신데렐라 이야기의 인기는 수그러들었고, 이는 계층 양극화와 높은 청년 실업 등 사회에 대한 불신이 다시 커진 시대와 일치한다. 사람들은 계층 상승의 기회가 오기는커녕 인간답게 살 최소한의 조건이 위태로워진 시대에 분노와 복수심과 공포심을 자극하는 드라마에 큰 공감을 보였다. 100년간의 한국 대중예술사에서 신데렐라 이야기가 가장 인기를 누렸던 시대는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조차 인기를 누릴 수 없는 세상이 암울하다고 쉽게 단정하기는 힘들다. 신데렐라 이야기가 인기 있는 세상이 살기 좋은 사회이며 바람직한 세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신데렐라 이야기가 인기 있는 세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뉜 세상의 지배 질서에 대해 대중이 비판의식을 별로 지니지 않는 세상, 노력과 행운에 따라 누구나 가진 자가 될 수 있다는 순진하고도 보수적인 희망이 지배하는 세상일 수 있다. 그저 우리가 살아온 100여 년이 그런 순진하고 보수적인 희망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는 세상이었고, 그래서 100년 동안 단 두 번의 행복하고 순진한 시대가 짧게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소한 일상을 톺아보고 몸에 박힌 생활을 낯설게 보는 시각,
박제된 사건이 아닌 인간 행위와 숨결이 담긴 사전
지금 우리의 삶은 과거에서 이어져, 현재를 이루고, 미래로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삶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과거 중에서도 현재와 멀지 않은 근현대를 돌아보는 일은 더 의미가 클 것이다. ‘한국근현대생활사큰사전’은 ‘내 안의 역사를 성찰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플랫폼’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근현대 인간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상을 돌아보는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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