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곡가들의 삶



해럴드 C. 숀버그 지음

김원일 옮김


448쪽 / 134X210 / 23,000원

9791190555678 04670 / 클




브루크너, 말러,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쇤베르크, 메시앙 등

거대 오케스트라와 음악의 이단아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들의 흥미로운 생애와 음악사





클래식 음악의 역사와 흐름을 작곡가를 중심으로 풀어낸 고전이다. 바로크 시대 몬테베르디에서 시작해 바흐,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쇼팽 등을 거쳐 20세기 미니멀리즘에 이르는 음악사의 계보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준다. 저자 해럴드 C. 숀버그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평론가로 평가받았으며, 음악 분야 최초로 퓰리처상 비평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음악이 진화하고 발전하는 과정뿐 아니라 작곡가들의 면면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 시대적 배경까지 세심하게 살피는 이 책에서는 그의 풍부한 전문 지식과 평론가로서의 날카로운 시각이 돋보인다.

소나타와 교향곡의 시대를 다룬 1권, 오페라 작곡가 이야기인 2권에 이어 3권에서는 작곡가들이 기존의 독일 음악과 낭만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의 활로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진다. 조성을 파괴하거나 전통적인 미학을 부정하면서, 민속음악에서 해법을 찾거나 과거로의 회귀를 부르짖으면서, 각자의 신념과 음악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노선을 개척하고 자신의 영역을 구축했던 작곡가들의 개성과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숀버그의 대표작인 이 책은 방대한 분량에도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 음악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에도 충분하다. 『위대한 작곡가들의 삶』 시리즈는 이번 3권으로 완간하며, 위대한 피아니스트들과 피아노 연주의 역사를 소개하는 숀버그의 또 다른 저서 『위대한 피아니스트』와 함께 읽기 좋다.



단숨에 읽는 작곡가 중심의 새로운 음악사

숀버그는 작곡가와 그의 예술 세계를 연대기순으로 추적하면서, 위대한 작곡가들의 생애를 중심으로 음악사 전반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냈다.

교회의 전례를 위한 ‘종교음악’이 아닌 기독교, 범신론, 자연주의를 모태로 개인의 신앙을 표출하는 ‘종교적 음악’의 대가 브루크너와 말러, 바그너로 대표되던 독일 음악의 육중함과 장황함에서 가장 완벽하게 탈출한 반독일 작곡가 드뷔시, 가볍고 명랑한 음악에서 활로를 모색했던 프랑스 6인조, 낭만주의와 결별하며 음렬주의와 무조음악을 암시했던 스트라빈스키, 독일 음악의 뼈대 위에 ‘영국적 풍모’의 살을 붙인 엘가, 독일 음악을 거부하고 영국의 민속음악에서 활로를 모색한 국민주의자 본윌리엄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자연의 시상을 표현한 전형적인 낭만주의자 딜리어스, 신비주의에 심취해 다양한 음악적 파격을 시도하기도 했던 낭만주의자 스크랴빈, 낭만주의를 고수하는 대신 자신만의 개성과 애수를 작품에 녹여낸 라흐마니노프, 모더니즘의 강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던 프로코피예프, 생애 첫 교향곡에서 발군의 천재성을 과시한 쇼스타코비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음악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부소니와 힌데미트, 현대적 기법을 접목해 미국 음악의 정체성을 확립한 코플런드, 민속음악을 모티브로 가장 순수하고 독창적인 음악 언어를 창조한 버르토크, 음렬기법을 창시한 쇤베르크와 그의 제자 베르크와 베베른, 자연의 원리를 오로지 소리와 리듬만으로 표현한 바레즈, 동시대의 음악 어법과 독특한 리듬을 구사하여 다채로운 언어로 신성을 표현한 메시앙, 무조음악을 통해 진리를 추구한 카터 그리고 각자의 신념에 따라 다양한 음악 양상을 만든 미니멀리스트들.
숀버그가 들려주는 위대한 작곡가들에 관한 이런 흥미롭고 생생한 이야기들은 작곡가들 자신과 그들 작품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한층 더한다.



음악 분야 최초의 퓰리처상 평론 부문 수상

『뉴욕타임스』의 전 수석음악평론가이자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평론가 중 한 명으로 불리는 해럴드 C. 숀버그는 자신만의 신랄하면서도 명료한 문체로 비평의 기준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에 미친 영향과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에는 음악 분야 최초로 퓰리처상 비평 부문을 수상했다. 1970년 초판을 출간한 이 책은 그의 대표작으로,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 1997년에 개정3판을 출간해 현대 음악사의 흐름까지 짚어줄 수 있는 작곡가들과 내용을 추가했다. 음악사 전반을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을 쉽고 흡인력 있게 풀어낸 이 책은 그가 서문에서 밝힌 ‘지성적이고 음악을 좋아하는 비전문가 독자’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와 호기심에도 부합한다.






차례

29 종교, 신비주의, 과거로의 회귀

브루크너, 말러, 레거

30 상징주의와 인상주의

클로드 드뷔시

31 프랑스의 우아함, 그리고 새로운 종

모리스 라벨과 프랑스 6인조

32 카멜레온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33 영국의 르네상스

엘가, 딜리어스, 본윌리엄스

34 신비주의와 멜랑콜리

스크랴빈과 라흐마니노프

35 소비에트 시대

프로코피예프와 쇼스타코비치

36 독일의 신고전주의

부소니, 바일, 힌데미트

37 미국 음악의 약진

갓초크에서 코플런드까지

38 물러서지 않는 헝가리인

벨러 버르토크

39 제2 빈 악파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

40 전 세계의 음렬주의 바람

바레즈에서 메시앙까지

41 새로운 절충주의

카터에서 미니멀리스트까지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본문 중에서

1960년대에 브루크너와 말러의 음악은 가히 혁명적인 재조명을 받았다. 특히 말러는 20세기 후반 클래식 음악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아방가르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그를 12음 기법의 정신적 뿌리로 규정하면서 그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구도와 탐구의 여정에서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강박적인 죄의식에 시달리며 의심과 불안으로 점철된 생을 보낸 말러. 그는 그와 똑같이 의심과 불안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예언자였던 셈이다. 그나마 옛 사람들은 기성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안식을 찾았다. 그러나 유대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되 어떤 종교적 활동도 하지 않았던 말러는 어디에서도 인생의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말러의 동시대인들 대부분은 ‘나’와 ‘우주’의 관계가 그럭저럭 평화로웠다. 말러는 죽을 때까지 그러지 못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브루크너, 말러, 레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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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대에 슈만이 ‘낭만주의’라는 용어를 싫어했듯, 드뷔시도 ‘인상주의’라는 말이 달갑지 않았다. 드뷔시는 〈영상〉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음악 철학을 설명했다. “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 했다. 음악을 통해 현실 세계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 어떤 바보들은 이를 인상주의라 부른다. 이 용어는 대체로 잘못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모든 예술 분야를 통틀어 신비로운 효과를 가장 잘 표현하는 위대한 화가 터너에게 평론가들이 거리낌 없이 인상주의라는 용어를 갖다붙일 때가 그렇다.” 그러나 용어란 정의하기 나름이다. 인상주의든, 초월주의든, 다른 무어라고 부르든 드뷔시는 새로운 청각적 심상으로 이 세상을 표현하여 여느 위대한 시인이나 화가 못지않게 현실 세계를 고양시켰다. 그의 고도로 날카롭고 정제된 감수성은 새로운 언어를 탄생시켰다. ―‘클로드 드뷔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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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행진곡〉의 첫 두 곡은 1901년에 프롬 콘서트에서 초연됐다. 엘가는 자서전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첫번째 D장조 행진곡이 끝나고 벌어진 풍경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다시 한번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또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사실상 다음 곡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결국 세 번을 연주했다. 순수하게 좌중을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 머지않아 에드워드 7세는 바로 그 선율에 가사를 붙여 노래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희망과 영광의 땅〉이다. 〈위풍당당 행진곡〉 전에도 엘가는 유명했지만, 이제 그는 완전히 스타가 됐다. 엘가에게 각종 훈장과, 미국 대학들로부터의 명예학위가 쏟아졌으며, 1904년에는 기사 작위도 받았다. 그해 코번트가든에서는 엘가의 음악으로만 구성된 축제가 3일 동안 열렸다. ―‘엘가, 딜리어스, 본윌리엄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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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쇼스타코비치는 슬픔과 회한에 찬 노인이 되었다. 그는 완전한 자유를 누렸더라면 더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 거라는 자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 (그의 회고록이 사실이라면)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음악을 세간의 평가와는 사뭇 다르게 바라보았던 듯하다. 이를테면, 그의 〈교향곡 7번〉은 레닌그라드 전투 승리와 영웅적인 소비에트의 수호자들을 위한 찬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의 말은 다르다. 그는 레닌그라드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교향곡 7번〉을 구상했으며, “따라서 이 곡은 단지 히틀러의 공격에 대한 저항으로만 볼 수 없다… 나는 〈교향곡 7번〉의 주제를 작곡하면서 인간성을 짓밟은 다른 적들에 관해서도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물론 여기서 “다른 적들”은 스탈린 패거리를 말한다. “전쟁은 새로운 종류의 거대한 슬픔과 파괴를 가져왔다. 그러나 나는 전쟁 전의 끔찍한 세월도 잊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네번째 교향곡 이후 모든 교향곡의 주제이다. 일곱번째도, 여덟번째도… 내 교향곡들 대부분은 비석이나 다름없다. 이 나라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들이 어디에 묻혔는지 가족, 친지들도 모른다. 메이예르홀트와 투카쳅스키의 비석은 어디에 세워줄 텐가? 오직 음악만이 그들의 비석을 세워줄 수 있으리라. 나는 희생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음악으로 비석을 세워주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내 음악을 그들 모두에게 헌정할 수밖에 없다.” ―‘프로코피예프와 쇼스타코비치’ 중에서





지은이 해럴드 C. 숀버그 Harold C. Schonberg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브루클린대학교와 뉴욕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뉴욕타임스』에서 30여 년을 일했으며, 1960~1980년에는 수석음악평론가로 재임했다. 1971년에는 음악 분야 최초로 퓰리처상 비평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위대한 작곡가들의 삶』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으며, 2003년에 87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옮긴이 박유진

경희대학교에서 경제학과 호텔관광학을 공부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후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1984』 『아무래도 하노이』 등이 있다.